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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2011)
저자 : 소래섭
출판사 : 웅진 지식하우스
구입처 : YES24
구입일 : 2011.05.17

첫번째 다 읽은날 : 2011.09.02

'명랑' 이란 단어를 접하면 다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들판을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의 모습이나 재미있는 만화주인공의 말과 행동을 떠올릴 것이다. 그야말로 듣기만 해도 좋은, 그리고 신나는 단어가 이 '명랑' 이다. 1930년대 들어서 각종 매체를 통해 '명랑' 이란 단어가 유달리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얼핏 식민지 시대의 책이나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지금보다는 못해도 나름 현대적이면서도 즐거운 삶의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학교에서는 영어도 배우고 노래도 부르고 체육시간에 마음껏 뛰논다. 요리집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다방에서 커피를 즐기며 영화도 보고 교외에 산책도 나간다. 식민지 시대가 순사에게 끌려가 주재소에서 구타나 당하던 그런 시절만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진짜로 몇몇 사람들의 말대로 근대화의 초석이 된 그런 아름다운 시대였을까?

저자는 잠시나 친일파가 될지도 모를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는다. 그것은 단지 '포장' 에 불과했다고 말이다. 식민지 시대에 대한 조선인들의 반감을 줄이고 마침 찾아온 대공황을 벗어나기 위해 계획중인 새로운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일제는 조선을 '명랑화' 한다. 군국주의에 맞는 시민을 만들어내기 위해 교육제도가 '명랑' 하게 정비(내신의 강화, 모범 인간 육성)했고, 대중의 정서수준을 고려한 오락을 '명랑' 하게 장려(당구 금지, 노래 검열, 영화 검열)했으며 조선 전통문화를 지키고 서구 문화를 배격하자며 윷놀이 등을 '명랑' 하게 권장(물자부족 시대에 돈이 덜 드는 놀이를 유도하려는 저의)했다. 일제가 포장해 놓은 그 속에서 조선인들은 100% 진실되지 못한 '명랑함' 을 누린 것이다.

식민지적 억압속에 녹아든 '명랑' 외에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명랑화' 의 모습도 나타났다. 때마침 발전한 서비스업 종사자들과 고학력자이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실업자가 된 '룸펜' 들은 돈을 벌기 위해, 우울한 시절을 잊기 위해 진심을 감춘 채 '명랑한 척' 을 해야만 했다. 우리가 간접적으로 보고 들었던 그 장면은 꾸며진 명랑함에 불과했던 것.

어찌되었던 어디론가 잡혀가서 모질게 고문당하고 핍박받고, 일제의 수배명령을 피해 도망자 신세가 된 사람에게도 힘든 시절이었지만 아무일 없는듯 경성을 걷고 그곳에서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시절이었음엔 틀림없다. 다른 민족에게 지배당하는 낯설음, 갑자기 밀려오는 자본주의의 물결, 너무도 빨리 변하는 세상 속에서 그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명랑한 겉모습' 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특정 시대의 역사, 문화,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관점의 해석이 있었지만 이 책은 '명랑' 이란 단어를 통해 감정의 측면에서 한 시대를 분석해 냈다. 특히나 자본주의가 가져온 '감정 노동' 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점은 매우 탁월했다. '이미지 정치인' 이라던지 '이미지 광고' 같은 단어로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은 그동안 우리도 알고 있던 것이지만 자본주의가 우리의 감정까지 변화시킨 것, 그리고 그 역사가 이미 꽤 오래됐음을 알려준 건 이 책에서 내가 얻은 최대의 수확일 것 같다.

앞부분의 명랑의 발견, 대경성 명랑화 프로젝트 부분은 실제 사실과 잡지, 신문 기사를 통해 시대상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쉽고 재미있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제공한 김기림과 박태원의 이야기가 언급된 후반부는 논문 같은 분위기를 내서 다소 어려웠다. 이 부분은 일제 군국주의와 당시의 대세인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나타난 명랑의 흐름이 진실되지 못한 것임을 자각했다는 정도로만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발단은 문학 공부에서 시작됐지만 연구는 문학작품 외 신문기사 등을 통해서, 마무리는 시대를 꿰뚫는 작가들의 관점을 설명한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비빔밥 같은 구성을 띤다는 점, 관심사인 역사와 문화, 옛날 신문 등을 통한 일상 들여다보기라는 세가지 활동을 모두 충족시켜 줬단 점에서 맘에 들었다.  인터넷서점에서 제목만 보고 뽑았던 책 치고는 대박이었다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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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베이(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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